[ZDNet기사] 'DB 전설'이 본 자동화와 일자리는… (김원 가천대 교수 인터뷰)

  • 작성일: 2018-01-16 10:15:00

'DB 전설'이 본 자동화와 일자리는…

김원 가천대 교수…"나는 낙관적, 기능이 없어질 뿐"

김원 가천대 소프트웨어학과(SW) 교수는 데이터베이스(DB) 분야에서 '전설'로 통한다. DB분야에서 숱한 '국내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우선 그는 미국 일리노이대학(UIUC)에서 DB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 1호'다. 미국에서 DB 회사를 처음 창업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또 DB 핵심기술 중 하나인 객체지향시스템 (데이터를 고객의 입장에서 저장하는 기술)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하기도 했다. 세계적 SW고수들이 우글거리는 SW최강 미국에서 DB관련 학회장을 무려 15년이나 역임했다. 그가 영어로 쓴 DB 관련 논문은 200편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최고 SW 인력 양성 프로그램인 'SW아키텍트'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1964년 경기고를 수석 입학한 그는 아버지 권유로 고등학교 2학년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UIUC에서 DB로 전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IBM연구소와 미국 민간 컨소시엄이 추진하는 차세대 컴퓨팅 개발 프로젝트에서 DB를 담당, 연구를 해오다 아예 DB 전문 회사를 직접 차려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SW 컨설팅을 계기로 한국에 들어온 그는 성균관대학교를 거쳐 2010년부터 가천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열중하고 있다. "국내에 제대로 된 SW학과를 만들고 싶어 가천대로 왔다"는 그는 IT부총장을 거쳐 석좌교수로 현재 가천대 SW중심대학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정부로부터 홍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SW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것"이라는 김 교수는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가천대에서 'DB 전설' 김 교수를 만나 자동화와 일자리, 우리나라가 SW강국이 되는 길, 삼성에서의 역할 등을 들었다.

■"자동화로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소리는 500년간 계속된 이야기"

=다보스포럼 이후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우려가 높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일자리가 대거 없어질 거라는 보고서가 국내외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자동화는 곧 소프트웨어화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어떻게 보는가.

▲자동화 때문에 직업이 많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사실 이 말은 16세기부터 계속해 왔다. 500년이나 된 이야기다. 500년간 이런 소리가 나온 셈이다. 재미있는 건,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의견도 반반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제껏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긴다는, 낙관쪽이다. 이미 역사가 말해준다. 많이 드는 예이지만 자동차를 봐라.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때도 "큰일 났다"는 소리가 많았다. 마차 끌던 사람의 직업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가 생긴후 얼마나 많은 새로운 직업이 생겼났나. 엄청난 숫자의 새 직업이 생겼다. 마차가 없어진건 어쩔 수 없었다. 인류 역사가 그런 것 아닌가. 어떤 직업은 사라지고 어떤 직업은 생기는 것이다. 셀카봉만 해도 그렇다. 스티브 잡스가 셀카봉이 생길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나. 누구도 예측못한 새로운 직업이 생길 수 있다.

=자동화와 일자리를 낙관하는 구체적 이유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세상이 점점 더 서비스 사회로 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개인형, 맞춤형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한다. 리츠칼튼 호텔이 왜 비싸겠는가. 맞춤형 개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별다방과 스타벅스 차이도 이 것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비스 받기를 원한다.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라는 직종이 없어질 수 없다. ​두번째는 사람들의 창의력을 믿기 때문이다. 셀카봉 만든 사람도 창의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창의적이다보니, 앞으로 새로운 뭐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종이 신문사들 망한다고 했는데 망하지 않았다. 새로 만들어질 직업을 이야기해야지, 없어지는 직업만 이야기하면 안된다. 결국, 직업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직업의 펑션, 즉 일부 기능이 없어지는 거다.

■인공지능이 개발자 대체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

=인공지능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대체할 거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동의 안한다. 한계가 있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직업의 일부 기능이 없어지는 거다. 삼성에 들어갔을때 개발자들한테 자바 사용하는지 물어봤었다.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당시 미국에서 자바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년후 한국에서도 자바 바람이 불었다. 자바 바람이 불었다고 해서 이전 C프로그램이 없어지지 않았다. 자바는 C프로그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AI가 개발자를 대체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신문기자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기사를 쓴다고 신문기자가 없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김원 가천대 SW학과 교수. DB분야 전설로 통한다.  김 교수가 한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 교수가 지난해 열린 한 SW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 김원 가천대 SW학과 교수. 데이터베이스(DB) 분야 전설로 통한다. (중간) 김 교수가 한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는 사진, (오른쪽) 김 교수가 지난해 열린 한 SW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는 사진.

=용어를 포함해 4차 산업혁명이 핫이슈이다. 어떻게 보는가.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몇 차 산업이라고 하는 거, 이거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이 정할게 아니다. 후세가 할 일이다. 2차 산업혁명을 보자. 제임스 왓츠가 "내가 2차산업혁명시대를 살고 있구나" 했겠나. 지금이 4차 산업혁명 시기인지는 50년이나 100년 후에 평가 할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보면 '3차' 시대 특징인 컴퓨터가 '4차'에도 핵심 역할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4차'가 엉뚱한 곳에서 나올 것 같다. 컴퓨터와 상관없는, 그게 무언지는 모르지만. 정부가 '4차' 용어를 쓰며 드라이브를 거는 건 찬성한다. 국민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측면에서.

​=한국에는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패키지 SW 와 SI 업체가 없다는 소리가 오래전부터 나온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SW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글로벌 SW강국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 그럴싸한 SW 대기업이 없다고 말하는데, SW 대기업을 뭘로 보는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제조기업이면서 SW기업이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은 'SW 덩어리'다. 그래서 삼성은 SW 회사다. LG전자 가전제품도 SW화하고 있다. SW없이 하드웨어 할 수 없고, 하드웨어 없이 SW 할 수 없다. 네이버도 SW 회사다. SW대기업이다. 네이버 때문에 구글이 한국을 다 장악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엔씨소프트도 마찬가지다. 게임은 기획이고 SW 경쟁력이 없으면 안된다. 이런 걸 생각하면 우리도 내세울 만한 SW회사들이 있다. 사실 미국은 "우리는 SW강국이다"고 말하지 않는다. 독일, 영국,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SW를 어떻게 정의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은 SW인력이 절대 부족...생태계도 취약

=한국 SW산업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근본적으로 생태계 구성이 안되어 있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이 뭘 개발하면 대기업이 보자고해 똑같은 것을 만들어 버린다. 그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죽는다. 미국은 그렇지 않는다. 유튜브는 원래 허접스럽던 조그마한 회사였다. 그런데 구글이 사들였고, 오늘날처럼 세계적 회사가 됐다. 우리나라는 이런 기업 문화, 생태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 또 하나는 기본이 약하다. 미국에서는 SW를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다. 너무 많기 때문에 떨쳐버리려고 '킬러 과목'을 만들기도 한다. 이게 아주 미치는 프로그램이다. 숙제를 많이 내줘 " 나 이거 안한다"하고 손들고 나가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게 없다. SW를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태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대학에서 SW를 전공하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대학에 오기전부터 컴퓨터를 잘 다룬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컴퓨터의 컴도 모르는 학생들이 컴퓨터를, SW를 전공한다. 성적에 매칭해 학교와 학과를 고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에게 C프로그램을 가르치니 SW학과들이 힘들다. 자바, 파이선, 등 컴퓨터 언어를 하나라도 다룰 수 있는 학생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올해부터 SW교육이 중학교에서 의무화된다. SW교육 의무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초중등학교의 SW교육 의무화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고등학교가 빠져 안타깝다. 초등과 중등에서 하는 건 엔트리와 블록가지고 레고처럼 짜깁기하는, 즐기는 정도다. 관건은 대학에 오기전 C나 자바, 파이선 같은 텍스트 기반 코딩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세상의 거의 모든 SW는 대부분 텍스트 기반 언어로 짜여져 있다. 스크래치나 엔트리, 교육용 SW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코딩의 '맛보기'다. 이거 가지고 미사일을 쏘거나 대기업 인사 관리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다. 고등학교에서 텍스트 기반 코딩을 꼭 가르쳤으면 좋겠다.

​=정부가 SW중심사회를 확산하기 위한 일환으로 2015년부터 'SW중심대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가천대도 해당 대학인데, 이 사업을 평가한다면..

▲큰 틀에서 볼때 상당히 중요한 사업이다. 놀라운 것이 정부가 통 크게 투자하고 있다는 거다. 올해와 내년에 각각 5개 대학을 더 선정한다. 각 대학에 일년에 20억씩 투자한다. 우리나라 SW인력은 중국에 비해 턱도 없이 적다. 2년전 중국에 갔을때 들은 이야기다. 중국에서는 매년 SW를 전공하는 학사 졸업생 수가 50만 명이나 된다고 하더라. 미국은 5만명 정도 된다. 한국은 추산컨대 5천명 정도되는 것 같다. 산술적으로 중국의 100대 1이다. 게임이 안된다. 되도록 많은 대학생들이 SW를 제대로 배워 사회에 나가야 한다. 특히 이과는 텍스트 기반 코딩을 가르쳐야 한다. 세상은 SW로 가고 있다. "컴퓨터 관련 일을 안할 건데 SW를 왜 배우나"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역사와 철학, 문학을 왜 배우나. 실용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천대는 어떻게 오게 됐나요

▲이길여 총장이 "SW를 정말 잘하는 학과를 하나 만들어달라. 국내 최고의 모델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오게 됐다. IT부총장으로 왔다. 부총장으로 4년여 간 일했고, 2014년 3월부터 석좌교수로 있다. SW중심대학사업 단장도 맡고 있다. 이 총장과 첫 만남은 2000년쯤 된다. 이화여대 BK21사업단장할때다. 이 총장이 찾아와 "SW 단과대를 만들려고 하는데 어떻게 운영하면 되는지" 자문했다. 그 당시 시원한 답을 못했다. 이후 삼성전자와 성대에서 근무하면서 당시 이 총장이 물었던 답을 찾았고, 이 총장에게 말했더니 "우리 학교에 직접 와 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고민끝에 성대에서 가천대로 옮겼다. 창업하는 셈 치자는 거 였다. 미국에서 창업해 14년간 기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당시 힘들었지만 익사이팅했다. 이 시절이 그리운 것도 가천대로 옮긴 한 이유다. "가천대 SW학과를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자" 이런 마음으로 왔다.

=프로필을 보니 미국 MIT에서 물리학 학사와 석사를 4년만에 동시에 취득했다.

▲경기고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전국 수석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오판 했다. 내가 똑똑한 줄 알았다(웃음). 아버지가 유학가라고 해서 갔다. 수속이 1년 걸렸다. 1학년 마치고 2학년때 도미했다. 미국에 친척도 없었다. 혼자 용감히 갔다. 세상 물정 몰랐다. 미국 대입이 한국과 같은 줄 알았다. 3학년 끝나고 입시가 있는 줄 알았다. SAT라는게 있는 줄 몰랐다. 미국 생활 1년이 되서야 SAT라는게 있는 줄 알았다. 당시 미국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SAT를 다섯 번 볼 기회가 있었다. 이중 점수가 제일 높은 걸로 대학을 간다. 고2 때 세 번, 고3 때 두 번 치른다. 나는 몰라서 세 번을 그냥 날렸다. 두 번 남았는데 이중 첫 번째도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느라 다음날 늦게 일어나 시험을 못봤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하나 보고 대학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4년만에 학석사를 동시에 받은 건 상당히 잘못한 것이었다. 물리학을 전공한 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물리학이 눈에 안보이고, 손에 안잡히다 보니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SW로 전공을 바꿔 UIUC에서 전산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박사 논문 주제가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였다. 관계형 DB로 미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건 한국인으로는 처음인 것 같다.

​=박사 학위후 무슨 일을 했나. 미국 MCC연구소에서 6년간 연구국장으로도 있었는데, MCC는 무엇인가.

▲박사를 받은 후 미국 IBM 알마덴연구소(미국 IBM Almaden Research Center)에서 4년동안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런데 1979년인가 일본 정부가 차세대, 5세대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미국이 이를 상당히 경계했다. 고속컴퓨터는 군사력이고 국력이니까. 일본이 미국보다 컴퓨터 기술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가면 안되니 미국도 뒤질세라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미국은 정부 주도가 힘들어 사기업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었다. 이게 MCC(Microelectronics& Computer Cooperation)연구소다. 5개 부서가 있었다. 이중 하나가 데이터베이스였고, 내가 국장을 맡았다. IBM 알마덴 연구소에서 DB 관련 일을하다 스카우트 받아 갔다. 질문을 던지면 질문의 성격에 따라 어떻게 하면 결과를 빨리 나오게 하나, 이걸 연구했는데, 그 결과가 오라클과 IBM 같은 회사의 제품에 적용되는 등 당시 임팩트가 컸다.

​=MCC 연구소를 나와 유니SQL(UniSQL)이라는 DB 회사를 미국에서 창업했다. 어려운 창업에 뛰어든 이유는.

▲당시 과욕을 좀 했다.(웃음). MCC에 있을때 개발한 DB는 내 박사 학위 주제인 관계형 DB가 아니라 객체지향(오브젝트) DB였다. 이를 기업에 기술이전해주니 뭔가 허전했다. 마치 아이를 낳아서 남한테 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낳은 아이인데 아이를 잘 키우는지, 버리는 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래서 내가 낳은 아이를 내가 키워보자는 마음에서 창업했다. 당시 관계형DB와 객체형DB가 누가 더 좋은지 씨름하던 때다. 둘은 누가 더 좋은 차원이 아니라 합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그래서 둘을 통합한 모델을 만들어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판매하는 회사도 설립했다.

​=유니SQL 말고 사이버 데이터베이스(Cyber Database)라는 회사도 미국에서 창업했는데.

▲유니SQL을 운영하다 보니 힘들고 피곤했다. 자금도 계속 필요했다. 그래서 투자사에게 유니SQL을 넘겼다. 대신 조금 쉽게 살고 싶어 만든 회사가 컨설팅회사인 사이버 데이터베이스다. 컨설팅회사다 보니 유니SQL처럼 다른 회사와 경쟁하지 않아도 됐다. 삼성전자에서 일하게 된 것도 컨설팅 때문이다.

■삼성전자 SW아키텍트 양성 프로그램과 개발 프로세스 만든 주인공

=한국에 귀국해 2년(2004.11~2006.10)간 삼성전자 기술총괄 임원을 맡았다. 어떤 일을 했나.

▲당시 삼성이 SW 분야 슈퍼 인력을 뽑았다. SW인력이 많이 필요하니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가서 보니, 엔지니어들이 불만이 많았다. 임원들이 자꾸 무리한 개발 일정을 준다고 하더라. HW와 SW를 같이 개발하다 문제가 생기면 SW로 해결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정된 SW 개발 일정을 어기고, SW인력이 실력이 없어 일정을 못지켰다는 소리가 나온다며 불만이 많았다. 삼성이 하드웨어 납기일만 신경 쓴 탓이다. 이런 환경이다보니 개발 프로세스가 잘 안지켜졌고, 품질 보장에 문제가 있었다. 품질을 보장하려면 프로세스를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SW는 인류가 만든 것 중 가장 복잡한 거다. 스마트폰만해도 몇 천만 라인(줄)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 몇천만 라인이 가다가 어떤 조건을 만나 이리저리로 갈린다. 그런데 이 조건이 굉장히 다양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모든 라인을 다 테스팅 할 수가 없는 거고,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실력이 문제가 아니다. 애초 불가능한 거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만해도 윈도7을 개발하는데 적어도 2,500명을 4~5년간 투입했다. 그럼에도 버그가 생긴다. MS가 실력이 없는것도, 회사가 부도덕 한 것도 아니다. 단지 SW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완벽히 하려면 몇십 년이 걸릴 수 있고, 그래도 완벽히 버그를 막지 못한다.

​=삼성에서 구체적으로 한 일은

▲품질을 높이려면 절차를 잘 지켜야 하고 테스팅을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엔지니어들에게 "자신이 짠 코드를 다시 체크하느냐"고 물었더니 거의가 안본다고 하더라. 그냥 컴파일러 돌려봐 문제 없으면 통과한다고 하더라. 그러면 안된다. 자기가 짠 것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기자도 기사를 쓰고 난후 체크 하지 않나. SW도 마찬가지다. 다시 체크해야 한다. 나는 SW를 '기술 글쓰기'라고 한다. 기술적으로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는게 프로그램이고 SW다. 기술자가 기술자의 언어로 기술에 대해 자세히 명령을 쓴 것이 SW다. 이게 글쓰기와 같다. 반드시 다시 봐야 한다.

​=엔지니어들에게 뭘 다시 봐야 한다고 했나.

▲삼성에 가보니 뭘 봐야 하는지 기술한 책을 가지고 오더라. 내가 그랬다. "그 책 버리라"고. 나라도 내가 짠 걸 그렇게 많이 체크해야 한다면 안본다. 그래서 딱 5가지만 보라고 했다. 예를 들어 계산을 반복하는 것 등이다. 이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200~250명 정도 그룹을 지어서. 전체적으로 5000명 정도에게 한 것 같다. 그때 그랬다. "개발 프로세스를 이렇게 심플하게 5가지로 만들었는데, 이걸 안하면 당신들은 엔지니어 이전에 사람도 아니다. 직무유기다. 그러니 이건 꼭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소리를 삼성에서 1년 반 정도 했다. 내가 심플하게 만든 개발 프로세스에 이름도 붙였다. SMP라고. '삼성 미니멀 프로세스'라는 뜻이다. 당시 이윤우 경영자가 SMP가 뭐냐고 묻길래 "스톱 무대포 프로그램"이라고 농담으로 말하기도 했다.

​=삼성의 SW 아키텍트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삼성에 가보니 SW아키텍트 양성 계획을 몇년전부터 기획하고 실행은 안하고 있더라. SW아키텍트를 어떻게 양성할거냐고 물으니 톱엔지니어 20명을 뽑아서 카네기멜론대학에 2년간 유학보낼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비현실적이라고 그랬다. 톱엔지니어가 얼마나 중요한데 2년이나 현장을 비우나. 그래서 내가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했다. 현업에서 일하면서 SW아키텍트도 될 수 있는. 이 프로그램 만들어 한 달에 한번씩 3일간 훈련시켰다. 한 일년정도 이 일을 하고 삼성을 나왔다. 지금도 이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다.

​=미국 ACM 펠로다. 2001년에는 유망 서비스 상도 받았다. 어떤 상이며, ACM은 무엇인가.

▲ACM은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의 약어다. 우리나라로 보면 한국정보과학회 같은 거다. 세계 최대 컴퓨팅 관련 학술단체다. 여기서 2001년에 최고공로상이라 할 수 있는 'Distinguished Services Award'를 받았다. ACM에 여러 분과위원회가 있다. 여기서 국제학술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학술전문지를 낸다. 내가 데이터베이스 위원회(SIGMOD, 시그모드) 회장을 8년간 맡았다. 이거 외에 데이터마이닝 학회도 내가 직접 만들어 7년간 회장으로 일했다. 합치면 15년이다. 동시에 데이터베이스 저널 편집위원장으로도 9년간 일했고, 이를 마치면서 인터넷기술이라는 저널도 새로 만들어 7년간 운영했다. 이런 활동들이 인정 받아 상을 받은 거다.

방은주 기자 / ejbang@zdnet.co.kr